“26세 대학생입니다. 혈압이 152가 나왔는데 고혈압 약을 먹어야 할까요?”

네이버 지식인을 보면 이런 유의 질문이 자주 눈에 띈다. 고혈압이 그만큼 흔하며, 병의 심각성에 비하면 증상이 없는 편이기 때문일 거다. 고혈압은 혈압계로 혈압을 재는 것으로 쉽게 진단된다.

게다가 고혈압 약이 한두 개가 아닌지라 치료도 가능하지만, 고혈압인지 모르고 지내는 사람도 많고, 고혈압으로 진단되었다 할지라도 치료를 안받고 버티는 사람도 꽤 있다. 이유인즉슨 고혈압 약을 한번 먹기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과연 이게 바람직한 태도인지 판단해보기 위해 고혈압에 대해 잠시 알아보자.


최고혈압 140, 최저혈압 90을 넘기면 고혈압

고혈압은 만성적으로 동맥의 혈압이 올라간 상태를 말한다. 운동 직후라든지 혈압을 측정해주는 사람이 아주 매력적인 경우 일시적으로 혈압이 오를지언정, 이런 걸 고혈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잡념을 버리고 난 뒤 다시 측정하면 낮아질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두 번 연속 혈압이 높다면 그때는 고혈압 진단을 붙일 수밖에 없다. 

혈압을 말할 때는 늘 최고혈압과 최저혈압을 같이 말해야 한다. 최고혈압이란 심장이 피를 쥐어짤 때 측정되는 혈압이고, 최저혈압은 심장이 이완되어 혈액을 받아들일 때의 측정치를 의미한다. 120/80이란 수축기 때 120 mmHg, 이완기 때 80mmHg란 뜻인데, 과거에는 최저혈압이 고혈압을 진단할 때 더 중요하다고 인식되었지만, 요즘은 최고혈압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고, 맥박압(pulse pressure), 즉 최고혈압과 최저혈압의 차이가 크면 위험도가 높아진다는 주장도 있다. 맥박압은 동맥경화증처럼 동맥벽의 탄성이 떨어질 때 커지니, 맥박압이 높아지면 그만큼 위험하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혈압이 얼마 이상일 때 고혈압이라고 부를까? 미국의 국립보건원(NIH)과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최고혈압 140, 최저혈압 90을 넘기면 고혈압이라고 정의했다. 최근에는 최고혈압 120, 최저혈압 80을 넘는 경우 ‘고혈압 전단계’라고 해 관리를 하고 있는지라 혈압이 ‘정상’이란 판정을 받는 게 무지 어려워졌다.

고혈압에는 원인이 명백한 경우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수많은 상황이 고혈압을 발생시킨다. 갑상선 기능 항진증, 신장질환, 경구 피임제 복용, 레닌(renin)을 분비하는 종양 등등. 어떤 사람이 고혈압일 때 어떤 이유 때문에 혈압이 높은지 알 수 있다면 치료는 쉬워진다. 원인을 제거하면 되니까. 예를 들어 레닌을 만드는 종양 때문에 혈압이 높은 경우 수술로 제거하면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고혈압의 원인을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원인이 명백한 고혈압을 속발성 고혈압(secondary hypertension) 혹은 이차성 고혈압이라고 하는 데 반해 원인을 모르는 고혈압을 본태성 고혈압(essential hypertension) 혹은 일차성 고혈압, 또는 원발성 고혈압이라 부른다. 본태성 고혈압이 문제가 되는 건, 고혈압의 원인을 제거하는  대신 강제적으로 혈압을 낮추는 치료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비특이적 치료는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고, 약을 써도 혈압이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웃집에 사는 미자를 좋아해 병이 났는데, 미자를 만나게 해주는 대신 컴퓨터 게임기를 사주는 게 상태를 그다지 호전시키지 않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원인 모를 고혈압이 고혈압 환자의 90%가 넘어

안타까운 건 전체 고혈압 중 본태성 고혈압의 비율이 90-95%에 달한다는 사실. 고혈압 환자들에서 치료에 잘 듣지 않는 경우가 비교적 높은 (50-60%) 이유다. 원인은 잘 모르지만 본태성 고혈압은 다음 요인들이 관여할 것으로 추정된다. 

1) 유전: 오래 전부터 고혈압의 발생에는 유전요인이 중요하다고 간주되어 왔다. 고혈압 때문에 병원에 가면 “가족 중에 고혈압이 있나요?”를 꼭 묻는 건, 그 경우 유전에 의한 고혈압으로 쉽사리 진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러 연구들이 유전과 고혈압이 상관관계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느 유전자가 고혈압에 관여하는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이에 대해서는 연구가 더 필요할 것 같다.


2) 환경
: 짜게 먹으면 고혈압에 걸린다는 건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밖에 비만과 술, 가족 수 등이 고혈압과 연관이 있다고 알려진 요인들이다. 난 날씬할 때부터 혈압이 높았기에 “살을 빼면 혈압이 내려간다”는 말에 별로 동감하지 않지만,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6개월간 4.4 kg을 감량하자 혈압이 2.5 mmHg만큼 감소했다니 고혈압이 있을 때 살을 빼는 것도 시도해 봄직하다. 

3) 레닌(renin)의 역할: 신장(콩팥)에서 분비되는 레닌은 여러 단계를 거쳐 안지오텐신 II (angiotensin II)라는 화합물이 되는데, 이건 동맥의 근육에 작용해 혈압을 올리는 강력한 혈압상승제이다. 그러니 안지오텐신 II를 만들지 못하도록 하면 고혈압을 치료할 수 있다.


'조용한 살인자' 고혈압, 각종 장기에 치명적인 손상을 일으켜

위에서도 말했듯이 고혈압은 별 증상을 일으키지 않는다. 치료를 안받고 버티는 사람이 많은 이유도 당장 불편한 게 없기 때문인데, 그런 분들이 아셔야 할 무서운 사실은 고혈압이 조기에 사망할 확률이 높은 질환이라는 거다. 멀쩡하던 사람을 갑자기 죽이는 병, 고혈압을 ‘조용한 살인자’라고 부르는 이유다. 고혈압은 도대체 어떻게 사람을 죽이는 걸까? 고혈압이 장기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자.

1) 심장: 가장 흔한 사인은 심장질환이다. 심장은 평소 혈관으로 혈액을 보내야 하는데, 혈관의 압력이 높으면 심장이 혈액을 내보내는 게 무지하게 힘이 든다. 그 결과 심장이 더 일을 많이 해야 하며, 그러다 보니 심장의 벽이 두꺼워진다. 그것도 어느 정도지, 계속 그렇게 일만 하면 지쳐서 쓰러진다. 그게 바로 심부전이다. 그밖에 심장이 산소를 많이 쓰다 보니 협심증이 오고, 이로 인한 심근경색으로 사망하기도 한다.

2) 뇌: 고혈압이 있을 때 목 뒤를 만지는 걸 본 적이 있을 거다. 이런 후두통은 고혈압이 심할 때 나타나는데, 여기서 좀 더 나가면 혈관이 막히거나 뇌출혈이 일어나는 등 심각한 사건이 초래될 수 있다.

3) 신장: 고혈압에 의한 사망의 원인 중 10%는 바로 신장 때문이다. 고혈압으로 인해 신장이 손상되어 나오지 말아야 할 단백질과 혈액이 소변으로 나오며, 결국 신부전으로 이행될 수 있다.


“최고혈압이 140이 넘거나 최저혈압이 90을 넘는 환자는 누구나 치료를 받아야 한다”

세계보건기구는 계속 고혈압의 기준치를 낮춰 왔다. 내가 배울 때만 해도 최저혈압이 95를 넘어야 고혈압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80만 넘어도 고혈압 진단을 내릴 기세다. 그 정도 혈압도 위험하다는 게 연구결과로 입증되었기 때문이겠지만, 문제는 그럴 경우 치료의 대상이 너무 많아진다는 거다. 성인인 경우 남성의 40%, 여성의 31%가 120-139/80-89에 속하는, 소위 고혈압 전단계에 속해 있고, 정상 혈압을 가진 사람은 남성이 28%, 여성은 47%에 불과하다고 한다. 너도 고혈압, 쟤도 고혈압이라면, 그러고도 별 탈 없이 잘 산다면 사람들은 자신의 고혈압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것이며, 진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도 병원에 안가는 사태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내과학 책에 쓰인 지침이 비교적 합리적으로 생각된다. “최고혈압이 140이 넘거나 최저혈압이 90을 넘는 환자는 누구나 치료를 받아야 한다.”


고혈압은 위험한 병, 매일 약 먹기를 두려워 말아야

치료방침은 이렇다. 저염식을 하고, 그게 안되면 약물을 쓴다. 주로 쓰는 약은 이뇨제와 아드레날린 차단제, 혈관확장제, 칼슘 차단제 등이 있고, 안지오텐신 II를 만드는 효소를 억제시키는 약도 요즘 각광을 받고 있다.  


고혈압약을 한번 먹기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하는 건 맞다. 그게 귀찮다고 해서 약을 먹지 않는다면 한창 일할 나이에 심부전이나 뇌출혈, 신부전으로 사망하는 걸 감수해야 한다. 어느 쪽이 나은가를 따질 필요도 없어 보인다. 게다가 요즘에는 고혈압 약이 좋은 게 많이 나왔는지라 아침에 한번만 먹어도 된다니, 아침밥 먹는다는 생각으로 챙겨먹으면 좋을 것 같다. 오래 살려면 약 먹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고혈압은 심각한 병이다.

서민 /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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