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떠나간 해병전우들의 명복을 빕니다


필자는 대한민국 해병대 787기 예비역 입니다.
몇 일전 해병 2사단 해안초소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선임으로서...인생의 선배로서... 지켜주지 못해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입대하여 지금까지 전우들에게 총기를 난사하여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은 처음인것 같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밀려와도 꿋꿋이 이겨낼줄만 알았던
해병대 안에서 이런일이 일어나다니 아직도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사고의 경위 및 전말은 이미 인터넷이나 티비에서 많이 얘기했기 때문에 각설하고,
대한민국 해병대 예비역으로서, 먼저 떠나간 후임들의 선임으로서 몇 글자 적어보려 합니다.


해병대의 기수란?

제 블로그 연재글에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해병대라는 집단은 나이와는 전혀 상관없는 집단입니다.
오로지 기수만 가지고 상하를 구분짓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해병대라는 사회에서 기수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계급이란 것보다 어쩌면 더 우선적으로
생각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간첩을 잡았다던가 다른 어떤일로 공을 세워서 1계급 특진을 했다고 하여
일병이 하루아침에 상병이 된다고 한들 부대안에서 그를 상병대우를 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이 기수로 상하가 극명하게 나뉘어지는 해병대의 단점이라면 단점입니다.

반면에...
해병대 출신이라 하면 어디서 근무를 하더라도 다른 대대나 다른 지역의 해병들끼리 마주치게 되면
기수를 얘기하고 거수경례를 합니다. 아마 길거리나 주변에 해병대 출신들이 있다면 알고들 계실겁니다.
내 동기가 아니여도, 내가 굳이 아는 사람이 아니여도 상관없습니다.
같은 집단에서 고생하고 근무했다는 동질감과 무엇이라고 말로는 설명할수 없는 의미들이 서로와 서로를
끌리게 합니다. 이런것들은 아마 해병대만이 가지고 있는 큰 특징인것 같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현역때나 전역후에도 현역와 예비역을 뭉치게 할수 있는 큰 역활을 합니다.

해병대의 깃발 아래모인 사람들로서 기수란...
자신의 계급보다, 입대시 부여되는 군번보다 개인에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럼 타군은 어떠한가?

한번은, 제가 첫휴가를 받아서 이종사촌의 부대에 면회를 간 적이 있습니다.
포천에 있는 육군 부대였는데요, 사촌의 계급은 이병이었습니다.
면회장소는 부대안의 PX 였습니다. 육군부대에 해병대 휴가복을 입은 사람이 들어가서 버티고
앉아있으니 모두들 외계인을 본것처럼 신기해 하더군요...
얼마후 PX 문이 활짝 열리며 사촌놈이 들어왔습니다.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몰골이 말이아니더군요..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중에 PX에 먹을거리를 고르려 PX병에게 갔습니다.
저는 여기서 뒤로 자빠질뻔 했습니다. 이제 갓 이병을 단 넘이 PX 병 한테
"아저씨~ 이거 하구요 이것좀 주세요~" 라고 하더라구요... PX 병의 계급은 병장이었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타 중대원 한테는 그냥 아저씨라고 부른다고 한다더군요...

이처럼 해병대는 타군과는 다른 병들의 세계가 있습니다.
해병대 장교나 이하 간부급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쯤에서 이번에 총기사고와 관련되어 불거진 기수열외에 대해 얘기해 보려합니다.
기수열외라... 사실 이런 단어는 제가 근무할때는 없었습니다.
저도 여기저기 뒤져보니 일종의 따돌림 현상이더군요...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이번 사건에 대하여 예비역으로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을 두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번째. 이상증세를 보인 사람을 왜?

기사를 보니 총기를 난사한 해병이 신병훈련소에서 이상 증세 판단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보통 신병훈련소에서 2차적으로 신체검사를 실시하는데,
전염성있는 B형 간염이나 A형 간염의 보균자 들은 모두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헌데... 이 사람의 경우는 왜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았을까요?
굳이 방어부대인 2사단으로 보내서 실타을 만지는 곳으로 왜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좀 더 강한 해병으로 키우기 위해서였을까요? 저는 대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두번째. 기수열외라?

기수열외란 것을 자세히 살펴보니까 무엇인지 알겠더군요...
기수열외란 단어는 언제 만들어졌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떠한 잘못을 했을때 그 사람을 마치 따돌리듯이 하는 병들만의 제도인것 같습니다.
이것은 아마 각 중대의 중대장이나 선임하사들도 공공연히 다 알고 있는 부분일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럼 어떠한 경우인가....?

병들간에는 서로 지켜야할 의무와 책임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의무들중에 가장 중요시하며 이것을 어길경우 절대 용납이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극상 입니다!!


후임병이 성질난다고 선임병에게 대든다던가 주먹다짐을 할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그럴수도 있겠지... 얼마나 갈궜으면 그랬겠냐... 좋은게 좋은거 아니겠어?"

혹시 이런 생각들 하시나요?
다른것은 잘못을 해도 욕한번 먹고, 아님 몇대 두드려맞고 끝이 나지만,
하극상이란 것은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군대에서의 근간은 계급으로 이루어 집니다. 높은 계급을 가진자가 낮은계급을 가진자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할때 낮은계급을 가진자에게 타협이란 없습니다.
일방적인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만 합니다. 이것이 군대의 1법칙 입니다.


그럼 하극상이 일어난 경우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만약에 하극상이 발생할 경우...
일단은 하극상이 일어난 경위에 대해 병장급들이 모여 알아보고 의논을 합니다.
그후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게 되는데, 절대 무조건적으로 하극상을 일으킨 해병을 탓하지는 않습니다.
선임해병이 어떠한 행동을 하여서 후임해병이 감히 선임해병에게 대들었는지,
누구의 잘못이 더 큰것인가를 분명히 확인한후에 결정을 내립니다.
후임해병의 잘못이 확실하다면 부대내에서는 하극상을 일으킨 해병을 부대내에서 제외시켜 버립니다.

여기서 제외 시킨다는 것은...
하극상을 일으킨 해병이하 후임병들이 그에게 거수경례는 물론 그가 지시하는 것에 대해
모른척하고 말을 듣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 버립니다. 따돌림 하고는 조금 다른의미 입니다.

위와 같은 지시를 받고 중대원이 행동을 한다해도 하극상을 일으킨 해병의 주위에는
그간 그와 친했던 형과 동생같은 전우들이 분명히 있을것입니다.
그럼 그들도 하루 아침에 등을 돌릴까요? 그것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아무리 군대라 하여도 사람간에는 정과 의리가 있기 마련입니다.
다만 그가 그동안 군생활을 어떻게 했는지, 후임들에게 잘 베풀어 주고 고민도 들어주는 형 같은
존재였는지, 선임들에게는 선임들 잘 챙겨주고 내무생활이나 전반적인 생활을 잘 하는 후임이었는지..
아니면 평소에 선임, 후임들에게 전혀 인정 받을수 없는 사람이었는지.. 에 따라 상황은 틀려지게 됩니다.
제 아무리 상명하복의 원칙에 따라 돌아가는 군대라 하지만,
그 원칙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이고 따르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사람도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제가 근무할 당시에도 제 한기수 위의 선임이 하극상을 일으켰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평소에 저와 친분도 있었고, 힘든것도 서로 도와가며 이겨냈고, 서로 많은 도움이 됐지요...
어느날 선임이 찾아와서는 어떤 선임해병 때문에 너무힘들다라는 얘기를 하며,
도대체 자신한테 왜 그러는지 알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던 어느날 일이 터졌습니다. 참지 못하고 대들어서 결국은 하극상으로 처리가 되었습니다.
다음날 부터 그 선임은 거의 왕따가 되다 싶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중대인원 전원이 그 선임에게 그렇게 대한것은 아니였습니다.
비록 잘못을 했다고는 하나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후임들이 많았고,
그 선임과 친분도 두터웠기 때문입니다.
몇달이 지나 자연스레 그 사건은 잊혀져 갔고 품성이 좋았던 선임은 다시 후임들에게
좋은 선임해병으로 기억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듯 누군가를 해병대라는 집단에서 매장시키는 일은 굉장히 드문일 입니다.
집을 떠나서 힘든 조직속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기에 선임들은 무엇보다도 후임들을 잘 챙겨주고,
후임들은 그러한 선임에게 배운것을 이하 후임들에게 물려주는 반복적인 일상이 됩니다.
물론 구타와 폭언도 있습니다. 없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견뎌내야 할 관문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사건을 예비역인 제 눈으로 볼때...


1차적인 책임!!

그것은 분명히 총기난사를 한 해병에게 있습니다. 무책임하고 도덕적으로도 이해가 안가는 행동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자신의 전우를 헤친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될 일 입니다.
저 또한 해병대를 거쳐온 몸... 그 마음 조금은 이해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해병이 그 길을 걸어갔고, 지금도 걷고 있습니다.
시도조차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한 해병은 도저히 용서 받을수가 없습니다.
차라리 헌병대에가서 신고를 하거나 중대장님께 얘기를 하면 되지 않았을까?
꼭 그런 극단적인 방법밖에 없었을까?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게 만드는 행동입니다.

저는 사고를 낸 해병의 마음을 조금은 알수 있을것 같습니다.
저 역시 때려 죽이고픈 선임 해병이 있었습니다. 날마다 괴롭히고 잠도 안재우고, 히죽거리며 건드리고...
하지만 저는 이를 악 물고 견뎌냈습니다. 해병대 지원할때의 신념으로 무조건 견뎌냈습니다.
또한, 선임병이 되어서도 그러한 악행을 후임들에게 저지르지도 않았습니다.
내가 당한것을 누구에겐가 또 한다면 그 집단은 그야말로 개판이 되기 때문일거라 생각했습니다.

결론은....
좀 더 참았어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세상이 살기 싫었어도 무조건 참아냈어야 합니다.


2차적인 책임!!

2차적인 책임은 사고를 낸 해병을 기수열외란 단어로 왕따를 시킨 현역 부대원들에게 있습니다.
언론에서 깊숙한 내용까지는 잘 알려지고 있지 않지만,
위에서 설명드린 하극상 이외에 다른 이유로 왕따를 시켰다는 것은,
예비역인 제가 생각했을때 전혀 이해할수 없는 행동 입니다.
대체 무슨 이유로 한사람을, 자신의 전우인 사람을 왕따 시켰을까요?
부대에 적응을 못하면 잘 적응할수 있도록 열번이든, 천번이든 가르쳐서 해병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중대장님이하 간부님들과 소속 해병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안되면 될때까지!!" 란 구호는 뻘로 있는게 아닙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해병대!!" 역시 뻘로 있는 구호가 아닙니다.
관심사병이라 유심히 지켜보았다던데 대체 무엇을 유심히 지켜 보았다는 얘기입니까?
그렇게 유심히 지켜보아서 같이 먹고 자고 웃고 떠들던 전우가 4명씩이나 죽었단 말입니까?


대한민국 해병대 현역들아!!
니 선임들이 그렇게 가르치던가? 니들 가슴에 박아놓은 빨간 명찰이 부끄럽지도 않는가?
강자에게는 더욱 강하게 밀어부쳐 승리하고,
약자에게는 한없는 사랑과 베품이 있어야 하거늘... 너흰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너희의 잘못으로 한순간에 전우들이 4명씩이나 먼저 하늘로 가버렸다.

조금만 더 신경 써주고 조금만 더 생각해줬더라면...
몇일전의 참사는 없었을 것입니다. 사고를 낸 해병은 그에 응당한 처벌을 분명히 받아야 합니다.
이외에도 많은 사고들이 있을것이며, 또한 각종 매체에서는 해병대를 이잡듯이 뒤져서
어떻게든 해병대를 깍아내리려 할 것입니다.


이번의 해병대 총기사고를 보며 예비역으로서...

그 동안 잘 지켜오던 해병대 병들만의 규칙과 생활들이 매체에 다 까발려지면서,
해병대를 거쳐간 예비역들이 마치 역적이 된 느낌을 버릴수가 없습니다.
또한 세상 사람들이 해병대란 집단을 더욱더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이 일어난 이후 저와 같이 근무하던 예비역 후임 몇명과 통화를 해보았습니다.
다들 기수열외가 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하여 후임들이 죽어갔는지...
도저히 이해할수가 없는 현실 이라고만 합니다.
저를 포함한 몇몇은 몇일간 계속하여 음주를 하고 속만 시커멓게 타고 있네요...

정말 다시는... 다시는... 이런 끔직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지금도 전방에서, 후방에서 힘든 훈련과 고달픈 내무생활에 지쳐있는 현역 해병들에게
대한민국 해병대 787기 예비역 선임이 몇글자 적어 보았습니다.


             후임들아!! 힘들고 죽겠거든 딱 30초만 참아라...
           선임도 그렇게 쫄병시절을 이겨냈고 내 위의 선임들도 그랬단다...


다시한번 먼저 부모님과 전우들의 곁을 떠나간 해병들의 명복을 빕니다

"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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